코로나팬데믹과 IMF

박우진 컬럼
2022. 09. 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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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어느 공유오피스 라운지. 애프터눈 티와 스콘, 초콜릿이 차려진 캔틴(스낵바)로 한 사람씩 모여든다. 각자 취향껏 홍차와 간식을 가볍게 즐기며 떨어진 당을 보충하고, 소파에 몸을 맡기고 잠시 휴식도 취한다. 삼삼오오 모여 환담을 나누는 이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통창에 기대어 테헤란로를 바라본다. 팬데믹 선언 이후 3년째, 아직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 때도 그랬다. 1997년 여름, 서울역 D그룹 본사 사옥 앞 거리도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흰색 마스크 대신에 흰색 와이셔츠 차림의, 이른바 넥타이부대가 그 자리를 채웠을 뿐. 필자도 그 일원이었다. 당시 ‘세계경영’으로 유명했던 D그룹의 신규사업TF 소속으로 전 세계를 출장 다니며 10년 후, 20년 후의 캐시카우 사업을 수립하는 일을 했다. 6개월여의 연구 끝에 그룹 임원들 앞에서 마침내 발표를 하게 되었다. 준비를 철저히 한 만큼 자신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생소한 분야와 개념의 사업계획이라 시간 내 이해시킬 수 있을지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걱정이 기우였던건 5분이면 충분했다. 사업의 본질을 꿰뚫은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기뻤다. ‘내가 이런 선배, 상사분들과 일하고 있구나…’라는 자부심이 생겨났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고 싶어졌다. 그들은 필자의 직장생활 롤모델이었고, 회사는 평생 일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그 해를 넘기지 못했다. IMF신청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부도사태에 그룹은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은 해체의 길을 가게 되었다. 회사는 직원들을 책임지지 못했고, 직원들은 무방비 상태로 거리로 내몰렸다. 더욱이 그토록 유능하고 열정 가득한 분들마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목도하며, 일과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을 갖게 되었다. IMF는 기업들에게 극심한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기업은 ‘노동의 유연성’으로 대답했다.이후 기업의 고용행태는 정규직, 비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기간제 등으로 다양화됐고 공채 보다는 수시채용으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업 중심의 흐름이지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 생각했다. 환경에 떠밀려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되는 상황을 없애야 했다. 해고의 걱정이 없이 일할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했다.

이에 필자는 우리의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일과 직업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2000년에 국내 최초로 프리랜서 플랫폼을 설립했다.  직장이 아니라 프로젝트 일감단위로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고 흩어지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제시했다. 이랜서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일감을 올리고, 일을 받아서 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MIT 석좌교수 토마스 말론(Thomas W. Malone)의 1998년 논문 ‘이랜스경제의 태동’(The Dawn of elance Economy)에서 영감을 얻었다. 논문에서 교수는 정보화시대가 발전하면 미래노동자의 모습이 “특정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로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독립자유계약자, 즉 이랜서(e-lancer)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에 비해 느리게 성장했던 프리랜서 마켓은 20여 년이 흐른 2022년 오늘, 그의 예측대로 정보화시대 한 복판에 있는 우리나라의 프리랜서 규모가 약 400만 명에 이르고, 2025년에는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16%인 45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에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은 일과 일자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재택근무, 하이브리드근무에서 워케이션까지 비대면업무방식이 활성화되었다. 회사는 직원들이 항상 한 장소로 출근하지 않아도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직원들은 붐비는 출퇴근 지하철을 타고 가서 직장동료들을 만나지 않고서도 동료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고용시장의 변화 뿐만 아니라 업무 장소와 공간까지 바꾸고 있다. 코로나팬데믹과 디지털전환이 IMF때 보다 더 큰 변화와 전환을 만들고 있다. 세상은 이미 네트워크화된 개인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에 걸맞는 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일과 일자리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술과 업무환경은 그러한 방향으로 더 빨리 달려가고 있다. 비록 시대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 되더라도 말이다. 오늘의 차는 기문과 운남이 블렌딩 돼있는 홍차다 아쌈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멜버른 블랙퍼스티다.    

호주 멜버른 도심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야라강(Yarra river)의 벤치에 앉아서 바라보는 바쁘게 걸어가는 직장인들의 날렵한 모습을 생각나게하는 차다. 야라강은 호주원주민들인 애보리진들과 초기 이주정착민들 모두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강이었다.  바닐라 향과 허니 향이 끝에서 느껴지는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홍차 한잔 같이 하시겠어요?”

 

호주

‘박우진의 T1530칼럼’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 IT프리랜서 플랫폼사인 ㈜이랜서의 박우진 대표가 오후 3시 30분 애프터눈 티 타임에 오늘의 차와 함께 IT People과 Trend, 일과 생활에 대해 전문가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칼럼입니다.

 

박 우 진

㈜이랜서 대표/CEO
고려대학교 공학석사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SEIT 수료
프리랜서 전문가
청와대 직속 ‘경제노동사회 위원회 위원’활동(2020)
자격증: Stanford PM, 기술거래사
수상: 정통부 장관상, 일자리창출 방통위원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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